일본군 2만여명의 자결 옥쇄와 미군 2만 4천8백명의 사상자를 기록한 제 2차세계대전 최대의 격전지 유황도는 일본의 도꾜에서 650마일 정도 남쪽에 위, 태평양 전략상 매우 중요한 요충지였다.
1945년, 미국은 국가의 운명을 걸고 전쟁이 종지부를 찍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미국은 도꾜와 유황도를 동시에 급습하기 위해 유황도 탈환을 위한 전면 공격을 개시했다. 72일 동안 계속된 공격으로 섬은 초토화되었으나 동굴 요새에 숨은 2만 3천명의 일본군을 찾아내는 데는 실패했다.
2월 19일 미해병 4사단과 5사단이 유황도 일각에 상륙, 길을 뚫었고 산 전체를 포위하는 데에는 나흘이 걸렸다. 유황도는 6천8백21 구의 산산조각난 시체와 1만 9천2백17명의 부상병들로 가득했다.
2월 23일 아침, 적탄이 날아오는 위험 속에서 28연대 제2보병대대 E중대는 성조기를 내걸기 위해 거칠고 험준한 산비탈을 오르기 시작했다. 통신사의 사진기자 조 로젠탈은 갑판장으로부터 이 소식을 전해 듣고 상륙부대를 따라 섬에 올랐다. 그는 다른 사진기자들과 함께 지뢰밭을 뚫고 전진, 여섯명의 해병들이 격전의 종식을 상징하는 성조기를 유황도 스리바치산 산정에 꽂는 장면을 촬영했다. 이 여섯 명 중 두명은 그 직후 일본군의 총탄에 맞아 전사했다.
이 한 장의 사진은 미국의 모든 것. 즉 미국민의 자부심과 용기와 희생을 말해 준다. 사실상 이 깃발은 태평양에서의 미국의 승리를 알리는 동시에 전쟁이 끝났음을 말해 주는 신호였다.